2007년 12월 05일
마음 공부.가 필요해.
12/2일 일요일. 아침 일찍 절엘 다녀왔다. 이곳 애틀랜타엔 일반 한국교민의 수도 많지만. 그 수에 비해 한인 교회는 더 많은 것 같다. 교회에 얽혔던 나의 그 끔찍하고도 토할 것 같은. 2000년도의 이곳에서 그 과거는 접어두고라도. 싫다. 정확히 말해 믿음을 강요하고 선교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함께 행해져왔던 그들의 역사도 싫고. 지금의 중동에서 이루어지는 대가성 선교역시 싫다. 다른 이들의 믿음과 신념은 totally 가짜이며 거짓되고 잘못된 것이라 믿는 그들의 아집도 싫다. 어쨌든 하고픈 얘기는 이런게 아니라. (갑자기 예전의 그 일이 생각나면서 격양되버렸다.)
애틀랜타에 있는 전등사라는 절에 다녀왔다. 원래 동생이 다니는 절은 원등사.라는데 지금 스님과 그 집주인 되시는 분이 잠시 한국에 가셨다고 한다. 원등사는 가정집을 빌려 있는 절의 형태인지라 그 두분이 안계시면 절이 잠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 말고 동생이 전에 다녀봤다던 다른 절로 갔다. 이곳이 애틀랜타에서 제일 큰 절이란다. 밖에서 보면 그냥 미국식 단층집인데. 내부에 들어가니 확실히 절같다. 내부에서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면 확실히 이국[異國].이구나 싶은데. 고개를 돌려 법당을 보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실을 거쳐 넓은 법당으로. 법당 문턱을 넘기전에 합장을 하고 반배를 한다. 11시에 시작하는 법회는 이미 시작되었네. 오랜만에 들어본 독경소리가 너무 좋구나.. 법당엔 그리 많은 사람이 있진 않다. 열댓명? 그중 노란머리의 미국 아저씨도 한분이 앉아계신다.. 법당 젤 앞엔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바로 그 싯다르타이며. 지장보살은 머리에 화관도 없이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전엔 해탈치 않겠다고 하신분. (설화엔 신라의 모왕자.라고 되어있기도 한것 같은데. 기억이..) 관세음보살도 너무 유명하신 분이네. 중생과 아마도 가장 가까운 분일게다. 나만해도 악몽을 꾸든. 아님 무슨일이 생기면 입에서 관세음보살.을 되뇌이게 되니까. 기독교는 하느님과 예수를 섬긴다는 유일신 신앙이라지만 본래 불교는 석가모니불.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남기신 불법에 따라 자기 자신을 수행하는 방법을 따르는 종교.이다. 저렇게 세개의 불상이 서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겠지. (아. 오늘따라 왜 이리 글 중간중간 배배 꼬인 맘들이 들어서는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보통 아침 예불은 천수경을 외우고 반야심경, 관세음보살 정근등으로 법회가 구성되었던것 같은데. 이 스님은 천수경과 다른 불경을 외우고. 그리고 관세음보살 정근을 좀 짧게 한다.(그 바람에 108배를 그 안에 다 채우지 못했다. 아 변명.-_-) 마지막엔 해탈주.라는 업을 소멸한다는 그런 경을 외우고 끝났다.(불교에선 내세를 믿으니까.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업은 이번 생이 끝나고 다음 생이 되어도 가지고 간다고 한다)
스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시간.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마침 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과거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죽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고. 미래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꿈속에서 머무는 사람이며. 현재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만이 살아있는 건강한 시간을 사는 사람인게다. 1년전. 1분전. 단 1초전의 시간이라도 그것은 죽은 시간이며 현재를 새롭게 살지 않으면. 미래는 변하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했던 그 겨울 아침의 짧았던 순간에 느꼈던 그 깨달음에 대한 바로 그 얘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발심[發心]과 항심[恒心]에 관한 얘기. 발심은 쉬워도. 항심은 쉽지 않다. 그것은 지금의 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발심은 맘 속에 자리잡아 나를 훌륭히 일으켜 세웠으나. 그 마음은 항심으로 훌륭히 이어가고 있질 못하다.
뉘우치는 마음.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애틀랜타에 있는 전등사라는 절에 다녀왔다. 원래 동생이 다니는 절은 원등사.라는데 지금 스님과 그 집주인 되시는 분이 잠시 한국에 가셨다고 한다. 원등사는 가정집을 빌려 있는 절의 형태인지라 그 두분이 안계시면 절이 잠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 말고 동생이 전에 다녀봤다던 다른 절로 갔다. 이곳이 애틀랜타에서 제일 큰 절이란다. 밖에서 보면 그냥 미국식 단층집인데. 내부에 들어가니 확실히 절같다. 내부에서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면 확실히 이국[異國].이구나 싶은데. 고개를 돌려 법당을 보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실을 거쳐 넓은 법당으로. 법당 문턱을 넘기전에 합장을 하고 반배를 한다. 11시에 시작하는 법회는 이미 시작되었네. 오랜만에 들어본 독경소리가 너무 좋구나.. 법당엔 그리 많은 사람이 있진 않다. 열댓명? 그중 노란머리의 미국 아저씨도 한분이 앉아계신다.. 법당 젤 앞엔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바로 그 싯다르타이며. 지장보살은 머리에 화관도 없이 모든 중생이 구제되기전엔 해탈치 않겠다고 하신분. (설화엔 신라의 모왕자.라고 되어있기도 한것 같은데. 기억이..) 관세음보살도 너무 유명하신 분이네. 중생과 아마도 가장 가까운 분일게다. 나만해도 악몽을 꾸든. 아님 무슨일이 생기면 입에서 관세음보살.을 되뇌이게 되니까. 기독교는 하느님과 예수를 섬긴다는 유일신 신앙이라지만 본래 불교는 석가모니불.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남기신 불법에 따라 자기 자신을 수행하는 방법을 따르는 종교.이다. 저렇게 세개의 불상이 서있는 것을 보면. 누군가는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하겠지. (아. 오늘따라 왜 이리 글 중간중간 배배 꼬인 맘들이 들어서는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보통 아침 예불은 천수경을 외우고 반야심경, 관세음보살 정근등으로 법회가 구성되었던것 같은데. 이 스님은 천수경과 다른 불경을 외우고. 그리고 관세음보살 정근을 좀 짧게 한다.(그 바람에 108배를 그 안에 다 채우지 못했다. 아 변명.-_-) 마지막엔 해탈주.라는 업을 소멸한다는 그런 경을 외우고 끝났다.(불교에선 내세를 믿으니까.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업은 이번 생이 끝나고 다음 생이 되어도 가지고 간다고 한다)
스님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시간.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마침 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과거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죽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고. 미래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꿈속에서 머무는 사람이며. 현재를 생각하고 사는 사람만이 살아있는 건강한 시간을 사는 사람인게다. 1년전. 1분전. 단 1초전의 시간이라도 그것은 죽은 시간이며 현재를 새롭게 살지 않으면. 미래는 변하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게 했던 그 겨울 아침의 짧았던 순간에 느꼈던 그 깨달음에 대한 바로 그 얘기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발심[發心]과 항심[恒心]에 관한 얘기. 발심은 쉬워도. 항심은 쉽지 않다. 그것은 지금의 내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발심은 맘 속에 자리잡아 나를 훌륭히 일으켜 세웠으나. 그 마음은 항심으로 훌륭히 이어가고 있질 못하다.
뉘우치는 마음.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
마음공부가 중요하다. 그리고 필요하다.
# by | 2007/12/05 03:12 | 思考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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