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12일
술_깡보다 맛.
술.을 맛으로(?) 먹기 시작한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은 듯 하다. 엄청난 주량과 횟수를 자랑하는 아빠 때문에 술이라면 아주 치를 떨었던 나는 대학에 가서도 여전히 술과는 멀게 살았다. 대낮에 몇명이서 수시간만에 이과두주 19병을 쳐마시고(..) 몇명이 119 에 실려가기도 하는 인간들이 서식하는 동아리 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내게는 너무나 먼, 싫은 당신.이었다. 겨우 맥주 한잔, 막걸리 한모금을 마시다가 울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다 보니 낯선 얼굴의 고학번 선배가 아니고서야 술을 권하는 이도 별로 없었다.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서 동기 중 유일한 여자였던 내가 초반에 살아남는 방법이 원샷.이라는걸 내 몸에 흐르는 피때문인지. 공순이로서의 본능.때문이었는지. 것도 아님 너무 영악한 나 자신.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알아버렸다. 첫번째 선배와의 대화.모임에서 소주.를 찾은 이후로 나름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룹사 중 술회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첫번째 모임은 쉬엄쉬엄 가자.라는 의도인지 맥주만을 제공하던 그 시절. 단순히 흔히 말하는 '안주빨'로 술을 넘기기 위해 사회의 때라곤 아직 타지 않은 순진무구,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소주는 없어요?'라고 말한 후 그 이후론 항상 소주가 궤짝으로 등장하였대나 뭐래나. 그렇게 정말 순전히 깡으로 빈속에, 부실한 안주에, 맥주 몇병과 소주 12잔을 원샷으로 넘기고 다음날 이름도 찬란한 Electro Magnetic Field Theory. 시험을 봤던 그 처절한 기억-. 그리고 신입사원 연수 중 시작된 공장투어에서 병맥주, 그리고 매실주 등등과 함께 소주 4병의 전적을 세운 이후론. 그리고 그날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취의 수술을 하고 그룹연수원에 목발을 짚고 들어간 이후로, 내 이름보다. "목발아가씨'라던지, "아 그 말술 마시는 신입 여사원?"으로 여기저기 알려졌다.
사회생활 겨우 6년차지만. 본사와 공장을 오가는 수십번의 출장들 때문인지. 나름 터프하다면 터프한 회사생활을 보냈다. 공장에서 일하는 반장, 직장 아저씨들에게 너스레도 잘 떨고, 회식때 술도 잘 마시고, 놀기도 끝장 잘 노는. 어느날 일주일 출장을 떠났다가 엄청 마셔 다음날 공장 화장실 변기에 피를 토한 이후론. '술을 너무 마셔대서 위에 구멍 뚫린 xx씨' 로 이름이 바뀌더니 나중엔 술은 엄청 잘 마시지만 술을 마셔선 안되는. 한마디로 술을 안마셔도 회사생활 편한 시기가 아주 일찍 도래한 것이다. 상무님부터 팀장님들까지 죄다 내가 술을 마시려고 하면 술잔을 뺏어버리는 사태가. 후후. 물론 만성위염과 함께 가끔 위궤양을 불러오기도 했지만. 참 효과적인 나름의 전략(..)이다.
(쓰다보니 절대 쓸데없는 말만 써버렸..) 애니웨이 저렇게 승승장구하던 시절도 술은 진짜 맛없었지만. 3년전부터인가. (3nd 와 헤지기 조금 전부터였을까?)맥주의 맛도 조금씩 알았고, 50도 짜리 우량해나 마우타이 같은 백주는 정말 뒤끝이 없어서 맘먹고(..) 마시기 좋은 술이었고-물론 섞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사케는 오뎅탕과 어울리는 따끈하게 데운 녀석도 좋고, 얼음 타 먹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녀석도 좋다. 따라놓으면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풀바디면서도 담백한 느낌을 주는 와인들도 즐거웠다. 오죽하면 소주도 입에 붙는 날이 있으니. 한번은 맥주 2병과 막걸리 10사발과 동동주와 또 소주 2병을 마시고(..) 술에 잔뜩 취해서 아빠에게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토요일 오후 1시쯤(..)이었다. 그러니 피는 속일 수 없다는게 엄마와 아빠와 그리고 나의 결론.
지금 저 발등에 건초염으로 약간 붉은기가 도는게 보이면서도 이웃댁에 갔다가 그 분이 올려놓은 와인시음기를 보니 뭔가 뜯어마시고 싶다는 충동에 괴로운 나는(게다가 얼마전 그 개-난리를 겪고서도-!). 슬프게도 술맛을 알아버린 사회인이 되었다. 그래도 예전엔 분위기나. 깡으로 마셨는데. 흑. 이젠 깡보단 맛.이라니. 술맛을 알아버린건 왠지 슬프다. 게다가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기쁠 때보다, 우울할 때가 많은 것도 문제고. 하여간 이 집엔 널려도 너무 다양한 종류로 많은 양의 술이 널린게 문제라면 문제. 뭐야. 저거 우량해잖아- 쳇.

우량해 속에 들어계시는 멋진(..) 용님. 갠적으론 이런걸 넣어주느니 양이나 더 넣으라고(..) 하고 싶다.

저 위에 있는 양주장은 아빠가 사랑하나 엄마가 두려워 마실 엄두는 못내는(..) 몇몇 컬렉션들. 주로 전시용이다. 계절이 변하거나 혹은 마음이 내킬때 양주장 아랫쪽과 침대 밑에 있는 컬렉션들 중 몇가지를 교환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아왔던 술. 루이 몇세라든가. 하여간 이따위 개미콧구멍만한 작은 술이 십만원대라는걸 믿을 수 없었다. 도둑놈들. 이걸 마시느니, 쳇.

# by | 2008/06/12 22:58 | 思考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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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소주부터 와인까지..모두 다 쓰기만 한데, 언젠가 제가 소주를 후루룩 마시는 걸 본 누군가가 그렇게 마시면 술 안 쓴 사람이 없다고 비웃더라구요;
그냥 탁 털어넣어야한다는데 어떻게하는지 모른다는.
아. 술맛을 알고 싶어요.ㅜㅜ
그리고 사실. 소주가 입에 짝짝(..) 붙는 날.이란게 그리 흔하진 않지요. :)
그리고 사실 전. 집에서 마시는 술이 좋아요. 특히 2명 혹은 3명. 아니면 혼자.가 제일 좋구요. 생각할. -혹은 잡상이라도- 충분한 꺼리를 주거든여. 그렇게해서 뭉쳐있던 감정을 풀어내거나 토해내거나 하니까요. :)
뭐... 그래도 술앞에 장사는 없더랍니다.
저도 그래서 종목을 바꿨다는.... 쿨럭~ -_-;
종목을 잘 바꾸신것 같아요. mminsq님의 시음후의 설명이나 묘사가 제게는 너무 좋던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