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없는 쨍한 하늘. 기분이 좋아서 그 동안 비 때문에 제쳐두고 있던 밀린 빨래를 했다.(완전 주부모드..;;) 아빠 와이셔츠와 양말과 속옷. 특히 속옷은 짱짱한 햇볕에 말려야 상쾌한 법. 어제 드라이 맡기려고 했던 아빠 여름양복 한벌도 맡겨야지. 비가 와서 못오시겠다던 세탁소 아저씨에게 다시 전화 해야겠다. (그러나 깜빡했다.-_-)
빨래를 다 널어두고 잠시 집 앞 마트에 갔다가 만화책을 반납했다. 작년에 동생이 보내줬던 J-crew 의 하이웨이스트 깜장저지끈원피스에 빨강 볼레로를 걸치고, 과거에(..) 한창 유행하던 하늘색스웨이드 퓨마를 신고, 정말 어쩜 그리 꼭 같은 색인지 하늘빛의 롱샴직사각형 가방에 반납해야 할 만화책 4권과 우량해 포장용 PV 백이었던 장바구니를 집어넣고 덜렁덜렁 나섰다. 집 앞에 있는 맥심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냉동동결건조 인스턴트 커피그래뉼 향내가 미지근한 바람에 휘감겨 날아온다.
벌써 이틀은 전에 반납했어야 할 만화책을 4권이나 가지고 있었더니 연체료가 1,500 원이 되어버렸다. 이런 쳇. 게다가 벌써 5권 까지 출간되었건만 있어야할 만화책이 집앞 대여점에 나오지 않고 있어 슬프다. 흑. 왜 3권까지밖에 안나와있느냐고요. ㅠ-ㅠ.
집앞 마트에 가서 오늘 저녁엔 무얼로 어떤 국을 끓일까. 무슨 반찬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며 빙글빙글 몇바퀴를 돌았다. 애호박 5개가 1000원이랜다. 싸다. 집어들며 호박을 사서 전을 부치자 했는데. 나 있을 동안 몇번이나 먹을까. 사두면 버리겠지 싶어 내려놓았다. 오이도 집어들었다가 내려놓고. 삼치나 고등어를 사려 했건만 그 녀석은 안보이네. 결국 콩나물, 숙주나물. (아빠가 안 질려하는 몇가지 나물) 비스켓 3 종류(..)를 사고 갈아드려야 자실 토마토 5개를 사들고 올라왔다.
집에 와서 콩나물과 숙주를 씻어 물위로 뜬 깍데기는 골라내고 굵은 소금 쳐서 냄비에 한소끔 삶아 (너무 익으면 맛이 없다. 약간 살캉할 정도. 대강 중간에 비린내가 나지 않을 타이밍(..)에 뚜껑을 열고 몇가닥 집어 먹어 본다.) 건져내어 나물로 무쳤다. 마늘을 다지고 파를 썰어넣고. 콩나물엔 맛소금과 깨소금, 고추가루를 더하고, 숙주나물엔 맛소금, 깨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을 더해서 조물조물 무친다. 아침에 끓였던 국은 다시 내일 아침에 내고, 저녁엔 신김치와 통조림 고등어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야 겠다.고 생각했다. 냉동실을 보니 더이상 파가 없네. 아빠에게 필요한 몇 안되는 야채. 대파 한단 사다가 씻고 다듬어서 지블락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둬야겠다 생각한다.
콩나물과 숙주나물 삶은 그 물에 신김치와 통조림 고등어와 멸치 한줌, 파, 마늘 조금, 식용유 조금. 그리고 고춧가루 한스푼을 넣어 김치찌개를 끓여두었다. 저녁에 아빠 오면 주지 뭐. 오늘은 아빠가 전화를 하고 오셨다.후후. 어제 뭐라고 잔소리(..)를 좀 했더니 일찍도 전화하시더라. 어제 먹었던 꽁치 조림을 또 찾으시길래 꽁치조림과 고등어김치찌개와 나물 두 종류, 그리고 새우쌀을 넣고 뚜껑 있는 종지에 담아 밥솥에 함께 쪄낸 계란찜을 찬으로 내어드리고, 식사 후엔 얼음과 꿀을 넣고 토마토를 갈아 드렸다.
이렇게 쓰고 나니 뭔가 한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하루가 금방 가더라. 만약 내 인생의 바로 그때, 그의 손을 잡았더라면. 혹은 또 다른 그의 손을 잡았다면. 이것과 비슷하게 살았을까. 싫지는 않지만.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평화롭거나, 여유롭거나, 혹은 무료하거나. 사실 어느 쪽이든 나는 잘 살았을것이다. 그러나. :) 이노무 욕심이 문제지.
괜히 나도 모르게 두근두근.
어느 비가 온 날 집 베란다에서 찍은 커피 공장. :)
